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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캠페인

게시물번호 : 557099
YTN 라디오 홍보방송 내용
직업교육 수출 시대 열렸다, 개발도상국에 부는 직업교육 한류 바람
홍보부 | 2019-11-28 08:51:18 | 조회수 389
회차 45회차
출연자 강신조
방송일자 20191127
URL http://www.kopo.ac.kr/board.do?menu=9421&mode=view&post=557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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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강신조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직업교육 수출 시대 열렸다, 개발도상국에 부는 직업교육 한류 바람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YTN 라디오 생생경제, 1부에서 저희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야기하고, 또 한·메콩 정상회의 이야기하면서 사실 메콩강 유역의 5대 국가들, 그리고 아세안에 속해 있는 국가들에게 우리가 공적개발원조, ODA를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2부에서는 ODA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한국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습니다. 교육과 보건의료, 정보통신, 농촌개발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걸친 국제협력사업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대한민국의 그러한 손길 때문에 개발도상국의 빈곤해소와 경제사회 발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국제사회를 생생하게 만드는 ODA 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한국폴리텍대학 강신주 교수와 함께 관련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강신조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교수(이하 강신조)> 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자동화시스템과 교수 강신조입니다. 반갑습니다.

◇ 김혜민> ODA 전문가로 모셨는데 자동화시스템과 교수님이시네요. 그러면 뭐를 전공하시는 거예요?

◆ 강신조> 자동화는 잘 아시다시피 기계라든가, 장치들에 사람의 손을 가하지 않고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계장치를 개발하거나 제작하거나 이런 기술들을 지원하는 이런 기술자를 양성하는 학과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자동화되는 시스템은 뭐든지 만드시는 거군요?

◆ 강신조> 그렇죠.

◇ 김혜민> 알겠습니다. 오늘은 ODA 전문가로 모셨는데, ODA라는 말을 처음 듣는 분도 계실 테고, 또 제가 앞서 짧게 설명은 했지만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이 ODA 사업에 대해서 간략이 설명을 해주시죠.

◆ 강신조> 그렇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사실 ODA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낯설고 이해하기가 힘든 단어였는데요. ODA는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라고 해서 공적개발원조라고, 그러니까 경제협력을 서로 개발된 국가나 빈곤한 국가가 서로 협력해서 인류가 공동으로 잘사는 그런 환경을 구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자, 그런 뜻에서 출발한 것이고요. 1961년 OECD 국가, 선진 17개 국가에서 개발원조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이와 같은 선진국들이 세계의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들에게 경제 부흥과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공적인 자금을 지원하거나 또 기술협력을 지원하거나 이런 것들을 차관사업이라고 하죠. 유상원조, 또는 무상원조, 이런 것들을 통틀어서 ODA 사업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 김혜민>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또 사회복지 증진을 돕기 위한 원조사업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멀리 갈 것도 없고, 우리나라가 받았었잖아요.

◆ 강신조> 그렇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사실 ODA의 수혜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선진 여러 국가에서 우리의 현재 직업교육 기관을 와서 세워주고, 그들의 기술을 저희들한테 가르쳐줬거든요. 저희가 이런 가르침을 받아서 그런 기술을 밑바탕으로 해서 저희의 기술 가치를 높이고, 또 저희들의 경험과 노하우, 이런 것들을 추가해서 이런 것들을 다른 나라에 다시 되갚아줄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된 것 같아요.

◇ 김혜민> 현재 폴리텍대학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훈련원, 그 건립도 우리가 ODA 사업으로 이루어진 거죠?

◆ 강신조> 그렇습니다. 제가 직업교육을 받았을 때.

◇ 김혜민> 거기서 받으신 거예요?

◆ 강신조> 네.

◇ 김혜민> 그런데 거기 교수가 되신 거예요?

◆ 강신조> 네, 그렇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그랬을 때 벨기에라든가, 독일의 자문들이 와서 상주하면서 그들의 방식대로 이런 식으로 하면 너희 나라도 우리 독일과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런 가르침을 주셨거든요. 

◇ 김혜민> 그게 기억이 나세요?

◆ 강신조> 네, 그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몸에 익힌 기술이잖아요. 몸에 익힌 기술은 평생 가도 그대로 살아난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김혜민> 자전거 한 번 배우면 언제 타도 몸이 기억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기술이라는 게 그런 건데요. 우리 교수님이 ODA로 설립된 폴리텍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훈련원에서 배우셨고요. 지금은 폴리텍대학의 교수로, 특별히 ODA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 교수님은 이 ODA 사업에 어떤 역할을 하시는 거예요?

◆ 강신조> 제가 그렇게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기술을 이 나라에서는 가르침을 받으면 이 나라 경제협력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을 조사하는 것을 우리가 타당성 조사라고 하거든요. 이 지역에는 어떤 기술들을 가르치면 좋겠다, 그리고 대상은 어떤 젊은이들을 위해서, 그다음에 어떤 부분들을 같이 공동으로 노력해서 해야 할 것인가. 건축을 지어주고, 교육훈련 장비를 공급하고, 거기에 관계되는 관계자라든가, 직업훈련 선생님들, 교수들,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도록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원하고, 이런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그러니까 그 국가에 필요한 게 뭔지 현지 타당성 조사도 하시고, 그 나라에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는 결과가 나오면 건물도 지어주시고, 또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력들을 연결도 해주시고요. 한 마디로 매니저를 하고 계시는 거네요. 

◆ 강신조> 그렇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이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해서 이런 것들을 통틀어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살려서 마치 우리가 받았을 때 어떤 것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가르쳐보니까 어떤 것들이 주요했다, 그런 노하우도 경험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연계해서 빈곤국가라든가, 개발도상국가에 그들이 우리 직업교육을 받으면서 또 그들만의 노하우를 추가해서 잘살 수 있는 그런 터전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김혜민> 얼굴에 나 보람 있는 일 한다! 이렇게 쓰여 있어요. 저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그러면 교수님, 직접 이런 개발도상국에 가셔서 ODA를 펼쳐보신 적이 있으세요?

◆ 강신조> 네, 제가 사업을 여러 나라에서 했는데요. 중앙아메리카에 니카라과라고 하는 곳에서부터 저기 동티모르라고 부르는 그런 곳. 베트남, 필리핀, 인도, 이런 곳들에서 쭉 사업을 했었고요. 그다음에 지금 현재는 서아프리카에 앙골라라고 있습니다. 상당히 빈곤하고, 환경적으로도 좋지 않은 나라인데, 이곳에 산업부와 함께 첨단기술센터 3년째 대학 건립하는 사업에 말씀하신 것처럼 프로젝트 매니저를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아까 니카라과, 이렇게 처음 듣는 나라에 가서 그래도 살면서 이 일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막막하지 않으셨어요?

◆ 강신조> 처음에 이런 거 할 때 정말 막막했어요. 저도 어떻게 이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을 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막상 니카라과에 갔을 때 제가 왜 대한민국에 태어났고, 제가 왜 어렸을 때 그런 고생을 했고, 지금은 대한민국에 왜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 김혜민> 그 모든 이유가 있음을 아신 거군요.

◆ 강신조> 네, 바로 그 말씀이에요. 제가 왜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니카라과에 가서 느꼈어요. 그들이 사실은 제가 갔을 때, 저에게서 그들 나라 발전을 위해서, 또는 자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그런 염원들을 저로부터 갈구하고 있던 모습. 제가 그것을 줘야 하잖아요. 저는 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저를 인간으로서 소중한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임이 충분하다, 이런 것들을 저한테 준 거죠. 

◇ 김혜민> 모든 것이 풍성한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너무 작았고, 영향력도 없었는데,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보니 그냥 초라해보였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닫으신 거군요.

◆ 강신조> 바로 잘 정리해주셨어요.

◇ 김혜민> 그 감동이 너무 느껴지게끔 교수님께서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실제 현재 시니어 그룹, 이런 분들이 그러한 이유로 ODA나 코이카, 이런 일들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교수님은 적극 추천하시겠어요?

◆ 강신조> 저는 그렇게 하죠. 왜냐하면 사실은 사람이 살면서 그냥 진짜 우리 대한민국 같은 경우에는 풍족하고, 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기회의 나라잖아요. 자기가 노력하고 도전하면 사실 다할 수 있다, 이런 행복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런 나라에서는 사실 자기의 소중한 가치, 그런 것을 못 느끼지만 그렇게 빈곤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에 갔을 때 작은 손짓 하나가 그들한테는 정말 큰 희망의 불빛이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몸에 세포에 녹아있는 그런 것들이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권유하고 싶고, 우리나라에서는 대체적으로 그런 ODA 사업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차관 원조의 ODA 사업을 하고 있고요. 코이카 국제협력단이라고 부르잖아요. 거기에서는 무상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 교육사업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요.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백년지대계라고 했잖아요. 그런 부분을 참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

◇ 김혜민> 사실 내가 일을 한다는 것, 내가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게 굉장히 자존감을 높여주는 거잖아요. 그런 것도 굉장히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가서 기술이나 일을 가르쳐주면 그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생기를 불어넣듯 살아나던가요?

◆ 강신조> 네, 그렇습니다. 제가 막막했듯 그분들도 막막한 삶을 살고 있었잖아요. 사실 정말 건장한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고, 돈을 벌 공간이 없어서 그런 것들이 보여요, 실제로 가보면. 저희들도 아까 말씀하신 4,50대 시니어 그룹들은 이미 그런 세계를 한 번 경험했잖아요. 그때 당시에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고, 그런 부분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잘 경험해서 알고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설명하고, 또 그들에게 그런 기술의 노하우라든가, 이런 것들을 해서 자기들이 그 나라에서 할 수 없으면 선진국에 가서 그들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갖는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보람이 있고, 인생의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혜민> 그리고 그 땅에서 우리를 통해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도 굉장한 보람이실 거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국폴리텍대학의 전신인 직업훈련원이 ODA 사업으로 이루어졌고요. 그래서 폴리텍에서 아마 책임감을 가지고 ODA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폴리텍대학의 ODA 사업의 목표나 지향점이 있으십니까?

◆ 강신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한국이 그런 도움을 받아서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라는 소리를 듣잖아요. 저도 ODA 사업 때문에 출장 가다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외국인들이 ‘리치 컨트리’라고 불렀을 때 마음이 뿌듯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거든요. 그냥 미국이라든가, 선진국에서 주었던 구호물품에 의해서 끼니를 때우거나 아니면 겨울에 추운 것들을 났던 경험이 있는데요. 그들에게 뭔가 기술교육을 우리의 직업교육, 선진국에서 받았던 것과 우리의 노하우를 추가해서 그들에게 이런 직업교육을 전해줌으로써 그들만의 어떤 노하우를 추가해서 새로운 역량을 개발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들의 개발된 기술이 우리나라 스마트폰이 전 세계 통일적인 규약을 만들어가듯 그들도 그들만의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씨앗을 뿌리는 자세, 이런 의미에서 직업교육은 굉장히 의미가 있고, 우리 폴리텍대학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혜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있었고, 또 한·메콩 정상회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ODA를 펼치는 국가들과 함께 상생을 논하는 회의였는데요. 오늘 한국폴리텍대학과 함께하는 시간에 ODA에 관련된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아주 귀한 인터뷰였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강신조 교수였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 강신조> 네, 감사합니다.